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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팀과 남겨진 팬, 존재를 향한 응원 – 한국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독서 후기

by 럽포워니 202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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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몇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오늘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다. 프로야구가 시작하던 그 당시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책이라 내가 어렸을 때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느낀점

주인공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자기 인생을 투영한다. 프로야구가 도입된 해에 중학생이 된 주인공은 친구인 조성훈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고지가 인천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회원이 되었고, 열렬하게 응원을 했지만 엄청난 기록을 남긴채 사라져간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 야구를 잊게 된다. 조직과 계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류대학에 진학했지만, 여러 번의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1998년 직장에서 해고가 되고 이혼도 경험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가 무엇이었는지 의미를 깨닫고 친구 조성훈과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만들기로 하고, 8명을 모집하여 야구를 시작한다. 이 팬클럽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구호를 캐치 프레이즈로 걸고, 마치 인생의 2막이 시작된 듯 철저하게 프로와는 다른 야구를 표방했던 슈퍼스타즈 식 야구를 표방한다. 결국, 직장인 동호회 ‘프로 올스타즈’와의 게임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몇년 후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그렇지만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잘 살고 있고 주인공은 아내와 재결합을 하고, 아이도 갖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과 나는 연배가 비슷하다. 책에서 1982년부터 삼미가 해체되던 1985년까지 삼미 슈퍼스타즈를 중심으로 프로야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소개하는데 입혀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 좋았다. 특히 어린이날 방수원 선수에게 노히트노런 당하고, 최다 점수차 패배, 특정 팀 상대 최다 연패의 기록들은 기억에 남는다.

슈퍼맨이 그려진, 별들이 들어있던 모자와 유니폼에 대한 기억도 난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도입된 1982년, 1983년은 군부가 집권하던 암울한 시기였는데, 그 시기 정부에서 ‘3S’를 도입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정치로 부터 멀어지게 했던 나쁜 정책들이 작가의 글로 표현되어 있어 또한 의미가 있었다.

작가소개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서도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닝을 해 대학에 붙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가기가 싫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먹고살기가 문학보다 백 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 가기가 좋을 리 없었다. 해운회사, 광고회사, 잡지사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불현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을 접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꼴에 ‘지구 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쉬엄쉬엄 밴드 연습도 하며, 밥 먹고 글 쓰고 놀며 나무늘보처럼 지내고 있다. 누가 물으면, 창작에 전념한다고 얘기한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줄거리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5시 국기하강식
-1982년 중학생 까만 교복, 1983년 교복 자율화
-삼청교육대
-삼미의 마스코트는 슈퍼맨
-37년만의 통금해제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 : 금광옥, 인호봉, 감사용, 장명부, 정구선, 정구왕, 김바위
-82년 승률 1할 2푼 5리
-응원가는 연안부두
-친구 조성훈, 팬레터에 대한 금광옥의 답장
-1982년 전기리그 10승 30패, 후기리그 5승 35패
-주인공은 삼미가 해체되면서 공부하여 일류대 경영학과 입학
-홍대 근처 하숙, 조르바의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중 3살 연상 그녀를 만남 -> 그녀의 결혼으로 방황
-1998년 현대 유니콘스 우승, 실직과 이혼, 조성훈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창단

후기

바야흐로 42년전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야구 하는 걸 좋아하고, 티비에서 하는 야구중계란 중계는 모두 챙겨 보던 나는 ‘프로야구’ 라는 것이 뭔지도 자세하게 몰랐지만, 티비 뉴스에서 나오는 광고에 홀려 열광하게 되었다.

당시 영등포 오비맥주 회사에서 OB베어스 어린이 회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를 졸라 당시 돈 5,000원을 들고 버스를 타고 가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다. 어떻게 보면 촌스럽기도 한 모자였지만 너무나 좋았고, 빨간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점퍼는 멋짐 폭발이었다.

그 해 박철순이라는 투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계형철, 김경문,  김광수, 조범현, 김우열, 윤동균, 신경식, 양세종 등 쟁쟁한 선수들이 투타에 조화를 이루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우승 기념으로 몇 가지 경품을 받았다. 본가에 아직도 남아있는 우승기념 컵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그 이듬해 1983년, 장효조라는 불세출의 타자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사실을 알고 나는 바로 팀을 갈아탔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OB베어스에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해 코리안시리즈에서 또다시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삼성맨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선수가 데뷔를 하고 은퇴를 했고, 팀은 영광과 비난의 시기를 거쳐왔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은 아직도 삼성 라이온즈다. 대구를연고지로 사용하는 것이 내 출신지역과 다르고, 직장도 완전히 연관이 없었지만, 한번도 좋아하는 팀을 바꾸지 않고 사랑하는 애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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