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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과 팝송이야기

[에세이] 다시, 턴테이블 위에 올리는 나의 청춘: Wham!의 《Wake Me Up Before You Go-Go》

by 럽포워니 202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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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손가락 하나로 터치 몇 번만 하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요즘, 굳이 손으로 판의 먼지를 털어내고 바늘을 살포시 올리는 그 아날로그의 수고로움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내게 팝송이라는 넓은 세상을 처음 알려준 것은 80년대 초반, 중학교 시절 들었던 FM 라디오였다.
그 시절 중학생에게 팝송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카세트테이프 겸용 라디오의 스피커뿐이었다.
공부를 한답시고 책상 위에 켜둔 카세트 라디오에서는 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전파사'를 아버지가 운영하셨기 때문에, 내 기억 속 우리 집에는 항상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고, 그것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지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CBS FM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박승화의 《가요 속으로》등에서 나오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60-80년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놀랄 때가 있다. 

그 당시 팝송을 들려주던 FM 라디오 프로그램은 참 많았다.
c, 박원웅의 《박원웅과 함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김기덕 아저씨가 진행하던 《2시의 데이트》였다.

특히 토요일마다 방송해주던 '아메리칸 탑40(American Top 40)'을 들으며 빌보드 차트 곡들을 익히는 것이 내 큰 즐거움이었다. 1~2주 만에 순위가 쉽게 바뀌지 않는 차트 특성상, 토요일 방송만 잘 챙겨 들어도 당시 유행하는 명곡들은 웬만큼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나의 카세트 라디오는 늘 PLAY와 REC 버튼이 깊게 눌린 채로, PAUSE 버튼이 걸려 있는 스탠바이 상태였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얼른 PAUSE 버튼을 해제해 녹음하곤 했다.

하지만 김기덕 아저씨는 특유의 입담으로 말이 참 많으셨고, 종종 타이밍 실수도 있으셨다.
특히 노래 제목을 잘못 알려주시는 바람에 녹음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놓치는 날에는 허탈함에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런 날이면 다음 주 주말까지 애타게 기다리거나, 저녁에 마음을 졸이며 저녁 8시 박원웅 아저씨나 밤 10시 이종환 아저씨의 방송을 기다려 다시 녹음을 시도하곤 했다. 손가락 끝에 진땀을 쥐며 녹음 버튼을 누르던 그 애간장 타던 기다림과 정성이 바로 내 중학교 시절의 전부였다.

또 김기덕 아저씨의 발음도 특이했다. 마돈나를 '마다나'라고 발음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LP로만 방송하던 시절이었기에 소개한 것과 전혀 다른 노래가 나오는 방송사고도 정말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겹고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던 노래들은 정말 많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신디 로퍼, 컬처 클럽, 프린스,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 시카고, 듀란듀란, ELO... 그가수들의 노래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녹음했던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늘어진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렇게 라디오와 테이프를 끼고 살던 중학생 소년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꿈에 그리던 턴테이블이 생겼다. 턴테이블과 라디오, CD 플레이어 일체형 오디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용돈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음반 가게로 달려가 LP를 한 장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김광한 아저씨가 내가 살던 마포에 LP 가게를 오픈하셨는데, 아저씨 얼굴도 볼 겸 자주 찾아갔던 기억이 선하다.

그때 처음 내 돈으로 샀던 LP가 바로 마돈나(Madonna)의 《Like a Virgin》과 왬(Wham!)의 《MAKE IT BIG》였다.
자켓을 열고 비닐을 벗겨 판을 올릴 때의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모은 LP가 수십 장이 되었고, 그것은 내 청춘의 가장 소중한 보물창고였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아버지 고향으로 이사 갈 때도 고이 모셔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후, 뜻밖의 산사태로 내 방이 흙탕물에 잠기는 사고를 겪었다.
내가 청춘을 바쳐 모았던 수십 장의 LP들은 모두 불능이 되어 버려야만 했다. 소중했던 기억들이 흙탕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삶을 살아가다 보니 그 아픔도 가슴 한구석에 묻혀갔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카세트테이프, LP에서 CD를 지나 MP3를 거쳐 digital 음원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 가슴 한쪽에는 늘 그 시절 LP판이 주던 묵직한 울림과 자켓의 감성이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나는 다시 턴테이블을 들여놓았다.
자체 스피커가 있고 블루투스 기능도 있는, 그야말로 턴테이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제품이었지만 그 울림이 주는 감동은 상당했다. 별도의 스피커를 구입해서 연결할 수도 있지만 공동주택의 특성 상 아직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움의 끝에서 내가 가장 먼저 다시 사들인 LP는, 수십 년 전 고등학생 시절 용돈을 아껴 처음 샀던 바로 그 음반, Wham의 최대 히트곡 ‘Wake Me Up Before You Go-Go’ 이 들어 있는 《MAKE IT BIG》이다.



턴테이블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 위로 바늘이 내려앉고, 특유의 '지지직' 하는 묵직한 첫 소리가 흘러나올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산사태로 잃어버렸던 것은 LP 판이라는 실물이었을 뿐, 그 음악과 함께했던 나의 뜨거웠던 80년대와 청춘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는 것을.

이제 이 왬(Wham!) 음반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신디 로퍼 1집》과 《들국화 2집》도 턴테이블 옆자리에 채워두었다. 그 후에도 《ABBA Greatest Hits Vol. 2》, 《이문세 4집》, 그리고 영화 OST인 《플래시댄스》와 《더티 댄싱》까지 들여놓아 이제는 어느덧 8장의 LP가 모였다.
앞으로도 가능한 한달에 1,2장씩은 사서 모으려고 한다.

다시 시작된 나의 LP 수집기,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나의 80년대. 바늘 끝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두 번째 아날로그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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